비닝(@bining33)님께 드립니다 >_</
*본문에 언급된 책은 테하누입니다 ㅇ0ㅇ 재밌어요
당신은 밤에 일하고 새벽에 잠든다. 당신은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당신에게 습관이 하나 생겼다. 잠이 오지 않는, 동 트기 직전의 내 서재에서 책을 한 권 빼어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잠들었다. 희여멀건한 아침에 서재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은 복잡한 추리소설을 읽고 있었다. 주인공이 범인을 밝혀내기 직전(당신이 범인의 이름을 말하기 전에) 나는 출근했다.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곧장 서재로 갔다. 안락의자에 당신이 읽다가 내려놓은 책이 보였다. 당신이 책갈피를 해 두어서 어느 부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살인자야, 하고 주인공이 절규했다. 살인자의 이름을 입 속에서 두어 번 굴렸다. 당신의 나직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당신이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인데도 당신이 이미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는 듯 목소리가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에 당신은 이미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서재로 가서 당신에게 어제 그 책의 클라이막스를 잠깐 읽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당신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러마고 대답했다.
당신의 목소리가 꿈에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꼭 현실 같은 꿈을 꾸었다. 당신과 마주앉아 당신이 책을 읽는 것을 구경하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목소리가 예뻐, 그랬던가. 그랬었나. 그렇게 말했었나. 당신은 무어라고 대답했지,
우리는 독서 취향이 꽤 잘 맞는 모양이다, 당신이 딱히 새로 책을 사지 않는 것을 보면.
잠에서 깨어났는데 눈 앞이 새빨갰다. 눈을 만져 보니 핏물 같은 게 묻어나왔다. V 교수, 눈이 왜 그래? 울었습니다. 충혈된 모양이네. (아뇨, 그냥 울었는데요.) 그날 하루 종일 새벽의 꿈에 대해 생각했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신이 오늘은 책을 읽지 않은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당신의 습관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날 밤을 새고 새벽 다섯시에 당신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당신은 문을 열고 무감정한 얼굴로 한 손에 들린 힐을 내던졌다. 입술이 조금 번져 있었다. 당신은 당신을 기다리는 나를 보고도 딱히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들어갈 때까지 당신을 주욱 지켜보았다. 당신이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지난번에 왜 책을 읽지 않았냐고 물었다. 당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읽었다고 했다. 꿈을 안 꿨어. 네가 깬 후에 잊어버렸던 걸지도 모르지. 무슨 책을 읽었는데, 당신은 대답하지 않고 책 한 권을 빼냈다. 그러고는 다리를 꼰 채 읽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어떤 그릇으로 만든 거예요. 난 그 모양을 알아요. 하지만 그 진흙은 모르겠어요. 삶이 나를 흔들어 춤추게 해요. 난 그 춤을 알죠. 하지만 무용수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게드가 한참의 침묵 끝에 말했다. "그렇게 그 춤을, 영원히 추어야만 한다면..."
당신은 읽기를 멈추었다. 눈에서 피가 조금 흘렀다. 당신이 웃기 시작했다. V, 당신 지금 되게 바보 같아. 당신은 책을 내려놓고 다가와서 내 눈가를 엄지로 천천히 닦아냈다. 당신에게서 향수 냄새가 났다. 나는 당신의 품에 안겨 다시 한 번 당신을 위해 조금 울었다. 당신은 계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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