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츄님께 리퀘 받은 크리빅터입니다!

시선이 닿은 곳에 네가 있었다. 그 나무는 이 숲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 팔을 두르면 그 거대한 위압감에 쉽게 질려 버리곤 하던 그 나무다. 나무를 베면 드러나는 속살엔 엄청난 양의 나이테가 겹겹이 아로새겨져 있을 터였다. 거의 돌처럼 굳어진 껍질과 겉으로 튀어 나와 반질해진 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나는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바삭, 하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네게로 가까이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쉴 새 없이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공명하는 듯 했다. 안 되는데, 나는 생각했다. 널 깨울지도 몰라, 나무 둥치에서 자는 아이.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나무 둥치에서 웅크려 자는 아이.

네 얼굴을 톡 건드리자 너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아."

마법 같은 일이라고, 고요히 생각한다. "춥지 않아?" 코트를 벗어서 네게 건넨다. 낡고 더러워진 코트, 그러나 나는 계속 멍하니 내밀었다. 주인을 찾아 준 것 뿐이라고, 그런 생각이었다. 이건 네 거야. 아이는 더 묻지 않고 코트를 받아들어 어깨에 걸쳤다. 당연하지만 크기가 너무 컸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손이 안 보여." 너는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추운 것 보다는 나아." 너는 이어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손을 잡고 숲을 걸었다. 발소리와 함께 들리는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는 한 사람 어치 뿐이었다. 너는 너무나 작아서 몸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거나, 아니면 유령인 것이 분명했다. 소매를 걷자 드러난 네 손은 아직 차가웠다. 내 손 역시 차가워서 너를 데우지 못한다. 미안하다고 말하자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빽빽한 나무가 눈에 닿기 무섭게 등 뒤로 빠르게 사라져간다. 달릴 때에나 볼 수 있을 광경이었다. 나무가, 숲이, 세계가 우리를 지나친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나는 오로지 둘뿐이었다. 우리는 잊혀진 여행자다.

시간이 다른 때보다
천천히 흘러갔다

네 발소리가 자박자박, 하고 났다. 고르고 예쁜 소리가 난다. 네 손을 꼭 쥐었다.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꾹 하고 손가락을 누른다.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뒤를 돌면 네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돼.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펼쳐진다. 너는 눈 녹은 듯 사라져 있고 숲은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숲은 회전하며 나를 미로 속으로 들여보낼 것이다. 기계 소리와 함께. 어쩌면 이 곳은, 거대한 기계 안이 아닐까. 해는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진다. 해가 지면 달이 나온다. 달이 지면 날이 밝는다. 톱니에 그런 것들이 쓰여져 있는, 그런 곳일 지도

몰랐다.

자, 다 왔어, 라고 말하며 나는 뒤를 돌았다. 이제 너를 잃어버릴 염려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눈 앞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네 눈에 내 눈을 맞추자 너는 그제야 입을 연다. 무서워.

그렇다, 동굴이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려는 참이었다.

"비가 올 거야."

네 손을 잡고 약하게 당겼다.

"추운 저녁이야." 너는 발을 옮긴다. 우리는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톱니바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허기를 채우고 구석에 웅크렸다. 덮을 것이 딱히 없어서 걸치고 있던 코트를 썼다. 너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잠에 들지는 않았다. 네 곁에 앉았다. 아, 하고 문득 네 손가락을 쥔다. 미지근해졌다. 그리고 참 작았다.

"노래 불러 줘."

나는 아는 노래가 없어. 너는 작게 보챈다. 불러 줘.

가사가 없는 멜로디를 입에 머금는다. 한 농가를 지나가며 들었던 노래다. 내 손이 코트 위를 향한다. 토닥이는 손 아래의 코트 아래의 작은 아이, 그게 너였다. 네 존재가 동굴을 덥힌다. 나 역시 덥히고 있다. 네게서 빛이 퍼져나왔다. 흔들리는 그 빛은 곧 꺼질 것 처럼 보여서, 나는 결국 노래를

시작했다.

어때. 괜찮아? 환상 속에서 아이가 눈을 크게 뜨며 웃는다. 누구한테 배운 거야? 나는 대답한다.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내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곁에서 이 노래를 불러 주셨어. 나는 항상 듣다가 어느 새 잠들었기 때문에, 노래의 끝 부분을 아직도 알지 못해. 괜찮은 거짓말이었다. 내겐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아이는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너는 내 눈 앞에서 자라났다. 손이 단단해지고 얼굴이 바뀌고 팔이 옷 밖으로 튀어나왔다. 웅크린 몸을 전부 덮었던 코트는 반으로 줄어들어 커버린 몸을 겨우 덮었다. 너는 아이에서 소년이 되었고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그저, 동굴 한 켠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너를 깨워야겠다. 살짝 벌어진 입가에 손 끝을 대었다. 깨어난 너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빅터."

너는 눈을 떴다. 너를 재우던 내 손은 돌연 허공을 향한다.

"나, 숲에서 길을 잃었어. 그래서, 이 동굴로 들어왔어."

아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노래, 해...주세요. 아버지. 잠들기 전의."

너는 곧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코트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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