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함 에이커, 터미널 AU

오래 전에 나의 아버지는 곧 내 손에 들려져 우체국 3번 카운터로 향하게 될 편지를 쓰느라 일주일에 두서너 번 정도 펜뚜껑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고는 했다. 아버지는 건네받은 편지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고 뜯어볼 생각도 않았던 나에게 서랍에서 꺼낸 어떤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어떤 음악가들의 단체 사진이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자세한 건 거의 다 잊어버렸던 그 사진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두 달 전이다. 오래된 사진은 이사를 위해 잠시 꺼내둔 아버지의 유품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사진을 꺼내들고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입을 꾹 다문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며 이 사진을 보여주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봐, 모두 음악의 대가들이야.' 청소년기의 나는 재즈보다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그렇다고 재즈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아마 아버지의 은근한 영향이었을 거라고 뒤늦게 생각하며 나는 아버지의 다음 말을 떠올렸다. '답장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넌 모를 거다.' 그 사람들은 정말로 모두 음악의 대가였고 아버지의 머릿속을 점령하는 커다란 하나의 기준인 동시에 나에게는 토요일 오전 30분을 뺏는 주범이었다. 아버지가 금요일 밤마다 투박한 손으로 찬찬히 라디오 채널을 맞추던 광경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종종 답신을 받고는 했는데, 내가 묵묵하게 아버지 대신 우체국을 드나든 건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답장을 받는다는 것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 쓰지 못한 편지지 십여 장과 잉크를 남기고 돌아가신 것은 그로부터 2년 뒤다. 그 편지지들은 사진이 들어 있던 상자 바닥에서 56장의 사인 종이들과 함께 겹쳐져 있었다. 인정해야 했다. 아버지는 꽤 괜찮은 재즈 애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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