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연성할 때마다 이 글에 추가합니다.

2015/1/18/알버스텔

손이다.

3단 생크림 케이크에 손이 박혀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팔부터 박혀 있다.

흰 크림에 박힌 그것은 힘이 빠지지도 않는지 빠르게 휘휘 돌아가기 시작했다. 계속 보다 보니 영 어지러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작은 손을 덥석 잡았다. 따스했다.

"자, 그럼 당기겠습니다."

손은 버둥거렸다. 동의인지 아닌지는 빼고 나서 물어볼 일이다.

순간, 큰 케이크는 힘 없이 허물어졌다. 장식용 딸기도, 거대한 크림 덩어리들도, 설탕 리본도 모두 바닥에 떨어져 뒤섞였다.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두 발로 겨우 버티고 선 케이크 범벅의 아가씨는 꽤 즐거워 보였다.

"남작님!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스텔라, 분명히 지난 달에 스페인에 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다음 달이 생일이시죠? 저는 여행 중 사정이 생겨서 안타깝게도 연회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대신 사람을 시켜서 케이크를 보낼게요. 나는 편지를 모두 읽고 원래대로 잘 접어서 책장에 올려두었다. 케이크라. 그녀는 나의 취향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가 직접 왔더라면…어쩌면 더.

그런데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버린 것이다. 샤워가 매우 필요해 보이는 모습으로, 그녀가.

"아가씨."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골랐다.
"샤워실은 저쪽 복도의 두번째 방…"
"아뇨, 아뇨.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요. 뭘까요?"
"뭡니까?"
"인사요!"
"어…안녕하십니까, 스텔라?"
"그런 거 말고요!"

도대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케이크 덩어리들을 치워 버리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 손수건이 여기 어디 있었는데…

주머니로 들어가려던 손이 휙 하고 들렸다.

"생일 축하해요, 남작님! 같이 케이크 고르러 가실래요?"

나는 잠시 그녀와 내가 시내의 가장 큰 케이크 가게 앞에 서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유리 너머로 거대한 초콜릿 케이크가 보인다. 그녀는 손 끝으로 그것을 가리킨다. 그러고는 말한다. 체리를 얹어야 더 예쁘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쁘지 않은 광경이 될 것 같다.

"그러죠."
"신난다!"
"일단 샤워실은 복도로 나가서 쭉 가신 다음 두 번째 방에 있…"


2015/1/19/라알

오늘은 미로를 걸었다.

화려한 무늬의 벽과 조금 얼룩진 바닥은 끝없이 이어져, 나 자신마저 잊게 만들었다. 시간을 죽이기에 딱 좋은 일이다. 손을 뻗어 벽을 만졌다. 벽을 짚고 따라가다 보면 출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출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요. 저택 문을 넘으며 내가 말했다. 노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을 빕니다. 내일은 그 분의 생신이죠.

그렇다면 행운을 빈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지지 않냐고, 그렇게 대답했다. 집사는 말 대신 긴 끈을 하나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앨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 돌아오는 길 같은 건 찾지 않아도 될 거라고요. 집사가 입을 연다. 어쩔 작정이야? 내 앞에 있던 것은 긴 전신 거울이었다. 거울 너머의 그가 웃었다.

그것을 넘어트려서 깨부술 수도 있었을 터였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저택은 넓고 또 넓었다. 아마 어딘가 구석에는 쥐가 살 것이다. 그것이 나타나면 밟아 죽이리라. 순간 발에 물렁한 무언가가 채였다. 답답한 공기 때문인지 눈 앞이 흐려서, 손으로 그것을 집어들어 얼굴 가까이 대었다. 잘린 손이었다. 손은 얇고 길고 컸다. 내가 찾는 사람의 손은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어리고 연약했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복도가 일그러진다. 저택은 그 자체가 커다란 구멍이었다. 중심을 향해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그 가장자리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점점 거무튀튀해질 것이다. 알 껍질을 깨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속은 썩었을 뿐이었다. 웅크린 남자아이, 그 아이가 보인다. 나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아이의 팔을 잡았다. 조금만 힘을 주어 당기면 작은 체구의 아이 정도는 가볍게 건져낼 수 있었다. 그 전에, 우선.

"알로이스."

기묘한 기계 소리를 내며 저택의 가장 깊은 부분, 어두운 중심점이 돌아간다. 천천히 회전한다. 소리는 우리 둘을 내리눌렀다. 종이 친다. 앞으로 열두 번일 것이다. 열두 번이어야 했다. 새 날이 밝았으니, 말 해 줘야지. 태어나줘서-

"생일 축하해."

아이는 눈을 감았다. 나는 손의 힘을 뺀다. 예전, 어딘가에서 본 광경이 어느새 떠오른다. 죽은 새였다. 길가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새는 아무리 건드려도 눈을 뜨지 않았다. 날개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건드릴 이유는 없다. 그 채로, 그 자리에서, 내가 발견하기 전의 상태 그대로 그 새는 썩어 갈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썩어버린 잔해는 어딘가로

기계음이 멈췄다.

너는 눈을 떴다. 라이오넬, 들려? 작은 목소리가 시간을 뚫고 내게 닿았다. 내 눈과 귀와 입과 머리에 닿았다. 이제 내 생일이야. 응, 그래서 아까 인사했잖아. 네가 웃는다. 미소 짓는 너는 아름답다.

"고마워."

2015/2/14/라알

너, 이게 무슨 꼴이야, 하고 물었다. 대답은 바라지 않았다. 네 입 속은 초콜릿으로 가득 찼고 손가락은 초콜릿 가루가 묻어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손을 마주잡자 너는 곧 고개를 돌리며 뭐라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달콤한 초콜릿과 남작님은 내 생각보다 꽤 잘 어울렸다. 기껏해야 고맙지만 난 먹지 않을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저분하게 칠해진 입가에 얼굴을 가져다대자 너는 뭐라 말하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씁쓰름한 가루였고, 기침을 참으려고 애쓰는 네가 문득 우스워서 나는 웃어 버렸다. 공기가, 달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와 내 사이의 공기가.

네 이 사이로 녹아 흘러내리는 초콜릿과 네 혀를 상상했다. 네가 그걸 뱉지 못하게 네 입을 틀어막았다. 네 코에서 식식대는 숨이 다급히 빠져나왔다. 아, 화가 난 거야? 장난스레 묻자 너는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선물이야. 먹어, 알로이스. 이제 손을 떼도 되지 않을까, 이 녀석아. 하고 네 눈이 간절히 소리치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손을 떼면 키스하고 싶어질 거야.

너는 날 밀어 넘어트렸다. 네 입을 감싸던 내 손도 넘어진 몸을 따라 떨어져나갔다. 아쉬운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새기고 싶은, 손바닥 한가운데에 남은 단 맛의 표식. 아무래도 오늘의 나는 조금 이상했다. 싱관없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특별한 행동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네가 위에서 날 보고 있다. 네 입술은 붉다. 알버트, 입에 초콜릿 묻었어.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키스 해, 라이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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