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츄(@_Trapezium)님께 드립니다.
“빅터, 가만히 좀 있게. 나랑 비슷한 덩치의 성인 남성을 안고 눕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흠, 좀 더 붉게, 좀 더 파랗게, 더 보랏빛으로, 빛나는 초록색, 창 밖에선 어린 아이가 나무통을 붙들고 토하고 있고 저택의 유령들은 입에서 양잿물과 연기와 넝마 조각을 뱉지. 다음에는 누가 관에 들어갈지 노인의 틀니를 걸고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면서 한 방씩 쏘는 거야. 빵야!”
“계속해.”
“이것 봐, 간지럽지 않아? 간지럽지 않냐고? 맘만 먹으면 이 손가락…붓으로 자네 귓바퀴라도 간질일 수 있는데. 그것도 파란색 물감으로 말이야. 자네 혹시 파란 귀를 가지고 싶지 않나? 그래, 유령들은 사실 모두 푸른색 오라를 풍기는 중이었지…그들의 몸에서는 갓 구운 레몬 파운드 케이크 냄새가 나서, 그들이 주변에 있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안 그러면 긴 빵 칼로 허공을 멍하니 찌르게 될 지도 모르네. 케이크는 달콤한 입에, 술은 정수리에, 소금은 유령들에게.”
“계속해.”
“요컨대 전세계의 모든 덜 구워진 파운드 케이크를 증오하는 붉은 왕이 이 세상에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는 얼굴보다도 큰 콧수염과 콧수염만한 발, 그리고 발 만한 새끼손가락을 가진 아주 멋있는 황제일세. 내가 왕이라고 했나, 빅터? 왕이 먼저인가, 황제가 먼저인가, 아니면 콧수염이?”
“왕.”
“좋아. 그는 흙에서 칼을 뽑고는 케이크를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케이크는 쿵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졌고 덜 익어서 뭉그러진 단면이 난잡하게 까발려졌지. 붉은 왕은 혀로 칼을 핥았어. 그는 사실 덜 익은 케이크 반죽을 먹는 걸 즐겼거든.”
“간지러워, 앙리.”
“그래? 빵을 자른 바로 그 위대한 칼도 딱 자네처럼 속삭였지.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그걸 들을 수 있었지. 사마귀의 눈을 찌르던 개미도, 나무를 오르던 공작 부인도, 탑에서 뛰어내린 젊은 회계사도, 밑에서 그를 저주하던 그의 아버지도, 사과를 베어물던 그의 약혼녀도, 어머니도, 바다를 질주하던 기차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뱀도. 그리고 작은 발을 바삐 놀리며 붉은 폭군에게로 달음박질치던 현자들도. 그들은 모두 돼지였지.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말일세. 무슨 색이었을까?"
"흠."
"물론 초록 색이었지. 그곳의 진흙탕은 마치 초록 페인트를 들이부은 것 같이 생겼거든. 그들은 정신없이 뒹구는 와중에도 코안경을 제대로 잡고 미간을 찌푸렸네. 한 발에 든 중요한 국가 서류가 사실 백지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말이야. 그들은 모두 마법을 쓸 수 있었지. 하지만 국무 장관으로서의 일처리는 형편없었지."
"그럼 유령들은?"
"유령들은 다 함께 둘러앉아 일출을 지켜보다가 울기 시작했지. 대부분은 안전하게 무덤으로 들어갔지만 일부는 자기가 외출한 틈을 타 빈 무덤에서 아기를 어르던 나쁜 구울들을 쫓아내느라 여념이 없었고, 남은 두엇은 그냥 서로의 눈물을 핥아주었네."
"간지럽다니까, 앙리."
웃지 말고…나까지 웃게 되잖나. 이런 진지한 서사시를 읊으면서 웃으면 쓰나. 여하튼 다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거지. 붉은 왕은 나무 밑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가서 칼을 꿀꺽 먹어치운 다음 잠에 빠졌네. 이제 그를 깨울 사람은 붉은 여왕 뿐이야. 돼지들은 모두 함께 안경점으로 달려가서 예쁘고 빛나는 새 안경을 맞추었네. 빅터, 이제 자야지. 잘 자.
앙리 뒤프레는 말 없이 웅크린 등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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