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날님께 리퀘 받았던 서재키스 앙빅......은 서재키스인데 왠지 그날따라 스파이를 존나 끼얹고싶어져서 끼얹음...망...설정구멍주의 나는 첩보물이 뭔지 1도 모른다

150222

금요일 저녁 8시 46분을 향해 시간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서재 문 앞에 서서 앙리 뒤프레가 되뇌였던 다짐들은 약 10분 정도 전에 깃털처럼 날아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다짐이 적힌 작은 깃털들이 '뜻밖의 계획 실패' 라는 이름의 큰 벽난로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인생이란 원래 맞닥트리는 모든 것이 내게 엿을 먹이는 상황이 대다수 아니었던가. 예를 들면, 일을 핑계로 한 데이트가 박살난다거나.

"맙소사. 접선 10분 전 교체라니 스위스의 어느 윗대가리가 고급 인력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굴린단 말입니까. 앙리 뒤프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담당, 이걸 깨먹으시면 어쩌냐는…"

도청 장치가 없는 것은 확실하니까…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담배를 비벼 껐다. 고풍스러운 자수의 테이블보에 흉하게 눌어붙은 자국이 남았다. 등 뒤의 카메라에서 작게 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각도를 바꾸어 그의 담배가 테이블보에 입힌 피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재 보려는 수였다. 여전한 정적 속에서 그는 약 500m 떨어진 골방의 비명을 상상했다. 뭐, 빠져나가는 돈은 내 통장의 것이 아니니까. 그는 그저 보고서에 한 줄을 덧붙이기만 하면 되었다. <재떨이가 없었음.> 그리고…

그는 뒷말을 삼키고는,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등을 기댔다.

앙리 뒤프레는 목에 걸린 신분증을 자연스레 빼내어 손수건으로 닦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 구멍이 뚫린 책등 안에서 붉은 불빛이 번쩍이는.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내가 책임자라면 아마 이 서재의 모든 책 속에 카메라를 심었을 테지, 그러니 이해한다, 라고 그는 조용히 생각한다. 어차피 보라고 한 행동이었다. '그쪽'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을 터였다. 목 아래를 내려다보자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어딘가 미묘한 느낌의 이름이 새겨진 그것이 보였다. 시드니 칼튼이라니. 물론 가명이었다. 지금은 그가 최근 48시간 동안 그 신분증으로 제네바 안을 아무 문제 없이 돌아다녔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 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바로 이 순간까지도. 요컨대 과하게 편집증적인 보안국 사람이란 길에 흔히 밟히는 흙이나 자갈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까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그의 데이트 요청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를 펄쩍 뛰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사건인 게 맞았다. 지지난번 접선 때 종이 봉투 아래에 넣은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게 키스라도 해 주고픈 심정이었다. 차? 커피? 빅터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커피. 사랑에 빠진 바보들이란 실수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위대한 우연의 일치인지 우주의 도움인지, 커피. 하고 말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입을 찍은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다. 현대 기술이여, 영원하라.

그래 봤자 앙리 뒤프레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찰국 본부로 뛰어들어와서 서류 가방을 내던지고, 다음 접선 때는 커피를 달라구요, 차는 맛이…더럽게…없단 말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뿐이었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속 가장 깊은 곳의 노랑 별 모양 메모지에는 한 줄의 글귀가 새로 쓰여졌다. '곁들일 것은?'

그런데, 이 집에 발을 들이기 10분 전에 받은 문자는 그의 어깨를 바닥 끝까지 내리누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고작 네 글자였지만 그는 그것들이 거대한 바윗덩어리 네 개처럼 느껴졌다. <담당 교체.> 그의 마음 속 냉장고에서 일주일 간 소중히 간직해온 킷-캣이 소량의 부스러기만을 남긴 채 바삭 부서졌다. 그렇게 된 일이었다. 앙리 뒤프레는 이 모든 상황을 보고서에 추가로 기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앞서 밝힌 대로, 한 줄이면 되니까. 자, 따라 해 봅시다. "재떨이가 없었습니다, sir."

시작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보안국과 감찰국의 타겟이 겹쳤고 한참의 '어리석고 비효율적인 난투극' 끝에(이 표현을 쓴 것은 빅터 쪽이었다)두 명의 첩보원은 각자가 원하는 정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뒤로 이어진 쓸모없는 수많은 회의 끝에 보안/감찰국은 서로 일부 협조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인류가 달에 첫 걸음을 내딛은 이후의 가장 큰 발전이라고 직원들은 한동안 쑥덕거렸다. 60년 전 감찰국이 보안국의 타겟을 미리 '삭제' 해버린 뒤로 두 기관은 냉전 상태였다. 이번의 애매한 협동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예견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단 일은 해야 하니까 모두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보이 미트 보이, 비밀스레 얽히는 손끝, 비밀 메모, 찰나의 티타임, 그리고 기타 등등의 화학 작용이 앙리 뒤프레와 빅터 프랑켄슈타인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노크하자, 그는 편히 기댔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서류 뭉치는 아까 그가 담배를 비빈 테이블 위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저걸 집어서, 건네고, 나온다. 그러면 밤 9시 15분일 테고 그는 차를 몰아 최대한 먼 곳의 바에 가서 한잔 할 계획이었다. 여기까지 쭉 정리하자 세상이 온통 어두침침해 보였다. 아, 밤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퇴근이란 참 좋은 일이다.

"열려 있습니다." 도청 장치도 없구요. 아주 좋죠.

"알아."

완벽한 O를 그리는 앙리 뒤프레의 입을 무시한 채 빅터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앙리 뒤프레의 따듯한 분홍빛 마음 속에서, 부스러졌던 킷-캣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생겨났다. 응, 그렇지. 킷-캣 녹차맛은 최고야. 그렇다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차분한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 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곧바로 그의 팔과 허리 사이에 끼어 있는 갈색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안에는 최근 4개월 동안 보안국과 감찰국 양측의 모든 CCTV를 해킹한 해커의 신상 정보가 들어 있을 터였다. 일을 벌리는 건 개인의 자유니 그건 그렇다 치고. 항상 문제는 걸린 다음에 터진다. 놈은 분명 내일 오전 12시가 되기 전, 정확하게는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스위스 안은 물론이고 타국의 모든 피난처와 키우는 강아지까지 모두 빼앗길 것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동정심이 드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인가. 그는 딱히 그 주제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빅터, 그러니까..."

"앙리, 5분이네."

"응?"

"5분 내로 끝내야 해. 궁금한 건 없겠지만 질문해도 좋네. 물론 자네 윗사람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야 엄청나게 빠르게 끝나겠지만."

"어?"

빅터는 작게 한숨을 쉬고 가지고 있던 서류 봉투를 앙리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을 뚫어져라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집어든 그는 풀로 봉해진 입구를 뜯고 안을 보았다.

뭐라 적혀져 있었다.

<자네 얼굴을 찍는 카메라는 없네. 5분 동안 궁금한 게 있으면 이야기 해. 돌려 대답할 테니 잘 알아듣게.>

"자, 그럼…이야기해 볼까."

그렇게 말하는 빅터의 표정은 차분하다 못해 음울하기까지 했다. 앙리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내 얼굴은 안 나온다고? 그럼 지금 카메라는 하나만 활성화 되어 있는 건가? '녀석' 이 일을 꾸미다가 실수로 뭔가 잘못 건드렸군. 안 그래? 걔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서류는 잘 있군. 흐음." 그는 지루하다는 듯 입술을 손끝으로 두들겼다. 그가 배우였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니." 그가 말하는 '이런 일' 은 물론 예기치 않은 엮임이다.

"그러니까 뭔가 잘못된 건가? 교체된 사람은?"

"그건 말할 수 없네. 당연하지만. 우린 지금 이렇게 같이 앉아서 하릴없이 별 뜻 없는 얘기나 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감안국' 같은 건 없으니까 말이야. 영원히 없을 테지. 그래…"

" '별 뜻 없이' 내가 뭘 가져왔는지 얘기해볼까?"

"좋…아." 빅터는 눈을 잠깐 게슴츠레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쪽지를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그거 좋지, 그래…나도 여기 오래 있긴 싫으니까. 할 일 빨리 끝내자고."

"왜 자네가 온 거지? 킷-캣은 잠깐 잊어버리고. 흠."

"귀찮게 다 설명해줘야 하나? 그 해커는 별 힘도 못 쓰고 잡혔어. 물론 우리 쪽의 성과가 컸지. 중요한 건 내가 오는 게 맞단 거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할 것 아닌가."

"당연하지. 다음 주에 데이트 할까?"

"뭐?"

"데이트."

"…………글쎄,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자, 서류 줘 봐. 읽고…조금 생각, 해 보는 시간을…가져야. 알다시피 이건," 앙리는 빅터가 손에 든 서류를 살짝 흔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확인은 중요하니까."

"내가 받은 변경 문자는?"

"그래, 맞아. 그 해커 녀석 명의로 핸드폰이 하나 개통되어 있었더군. 물론 지금은 정지시켰지."

"대신 오기로 한 자네 쪽 요원의 코드네임은 잭 더 리퍼였지."

"음, 내 생각에 이제 이 이상한 대화를 끝낼 때가 온 것…같아. 이제부터는 그냥 말할 테니 잘 들어. 보안국에 스파이가 있었네. 그 쪽 경로를 통해 해커에게 CCTV를 전달한 모양이야. 해커의 뒤를 봐주는 제 3세력에게 보안국은 제어당하고 있고, 자네가 받은 변경 문자도 그 약소한 연장선이지. 사실 안 보냈어도 상관 없지만, 자네의 실망한 표정이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자네가 오기 30분 전에 '누군가' 의 하수인이자 오늘 날 대신할 뻔 했던 잭 더 리퍼를 기절시켜서 마당의 수영장에 던져넣었네. 그러니까…나한테 키스하게, 앙리."

빠르게 말을 쏟아낸 빅터를 보며 앙리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누가 누가 입으로 더 완벽한 O를 그리나~ 대회 2부인가.

"키스하라고?"

"그래, 이리 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다가온 빅터는 앙리를 일으켜 세우고는 제일 가까운 벽으로 밀었다. 쿵 소리와 함께 책 몇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목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리자 넥타이를 쥐고 입술을 깨물며 서 있는 빅터가 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해."

"왜?"

"하라면 해."

두 번. 두 번 확인 사살 당했다. 그 정도면 후폭풍 걱정은 안 해도 정말 괜찮다는 이야기다. 등 뒤의 책이 빠진 자리에서 카메라가 윙 하고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등으로 꾹 막으며 말했다.

"그러죠."

그래서 앙리 뒤프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키스했다. 보고서 위에서 만년필이 잉크를 쏟으며 춤을 춘다. 이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으며, 정확히는 본능이…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보고서가 아니라 시말서를 써야 할 판이다.나중에 그는 이 일을 회상하며, 조금 더 덜 긴박한 상황이었다면, 하고 후회하고는 했다. 어쨌든 첫 키스니까. 처음은 언제나 예상치 못할 때에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입술이 떨어지고 그들은 방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딱히 바뀐 건 없어 보였다. 앙리는 몸을 돌려 등을 찌르는 카메라를 손으로 퍽 쳤다. 뭐 한 거야? 빅터가 묻자 그는 그 빈 자리에 책을 슬쩍 밀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귀를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렸다.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앙리 뒤프레. 자네도 정보국 요원이면 생각을 해 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키스가 안 먹힌 거지."

"키스가 대체 어떻게 먹힐 거라고 생각한 건데? 아니, 애초에 의도가 뭔가, 그거?"

"시선 끌기? 놈의 판단에 혼란을 주기 위해?"

"아무래도 그건 틀려먹은 것 같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뛰어야지."

"좋아."

그들은 뛰기 시작했다.

' > 프랑켄슈타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리빅터/멸망  (0) 2015.04.12
앙리빅터/이름  (0) 2015.04.12
크리빅터/몸에 맞지 않는 코트를 입은 소년  (0) 2015.02.15
류한앙빅/2  (0) 2014.11.23
류한앙빅/1  (0) 2014.11.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