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님께 드립니다 >…<)/ 

드뷔시의 Suite pour piano-sarabande를 들으면서 작업했습니다!


숲 속에는 호수가 없어요. 누군가 말했다. 미신입니다. 누군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들의 덩어리죠.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보름달이 비추는, 고개를 숙이고 그 빛에 의해 바닥이 엷게라도 보일까 눈을 찌푸리다 보면 무언가가 올라올 거라고 믿게 되는 그런 호수가 있을 거라고, 있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말하면 어떨까요? 꿈에서 본 게 아닐까요? 하지만 그걸 5인이 주장한다면, 아니, 10인이 동시에 꿈을 꾸었다면…숫자는 점점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아요.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서약을 하게 됩니다. 숲 속에는 인어가 사는 호수가 없다. 나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약을 거부한 한 사람이 남게 됩니다. 이제 다수가 말 할 차례입니다. 들어 봐, 차분하게, 그렇지. 에이시, 숲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 넌 미친 사람 취급 받을 거야. 사사즈카 에이시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문을 열었고 깊은 숲의 질척한 가장자리에서 또다시 살짝 비틀거렸고,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녹슨 랜턴을 꽉 쥐었다. 에리가 말했다. -얼마나 걸려요? 그녀는 승마복을 입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그녀의 눈은 번쩍였다. 두 시간 쯤. 사사즈카가 대답했다. 사사즈카는 서재 책상에 핀으로 박아 둔 에리의 답변을 기억해냈다. 칼로 갈색 봉투를 살며시 잘라내자 질 좋은 종이가 딸려나왔다.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지금 갈게요. 기다려요.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기묘한 정신을 끌어안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눌 준비는 되었는지에 대해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채로. 어두운 숲은 이를 악물고 그들을 기다렸다. 에리 역시 랜턴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발 아래가 흙인지 진흙탕인지 물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옅고 넓은 물웅덩이를 걸었다. 텅 빈 하늘이 바닥에 비춰지다가 발걸음을 내딛는 주변으로 넋없이 흩어졌다. 이 밤이 지나면 코우바야시 에리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별빛이 흐르는 엷은 땅과 울부짖는 나무와 오직 혼자 남은, 인어에 대한 꿈을 꾸는 남자에 대한 꿈을. 혼자 남은 것은 인어인가? 인어일 것이다. 그녀는 흐릿한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억을 안고 다시 돌아가겠지. 말을 타고…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것은 두 사람이 된다.


그들의 숨에 불덩어리가 섞여들었다. 바람이 한 층 날카로워졌다. 그들은 숲에 있는 것과 동시에 들판에 서 있었다. 들판은 물로 채워졌다. 그들은 물 속에서 물을 찾아 움직였다. 사사즈카는 나뭇가지를 헤치며, 달이 호수 속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눈 앞에 그렸다. 거대한 돛처럼 생긴 흰 새 한 마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얼마 뒤 은색으로 빛나는 고리 하나가 물 위로 떠올랐다. 사사즈카는 그것을 집었다. 순간 그는, 물 속의 하얀 눈 두 개를 보았다. 검은 물은 달빛에도 불구하고 깊고 짙어서, 그 빛나는 눈은 마치 길고 검은 통로의 반대편 끝에 홀연히 나타난 것 같았다. 그쪽의 눈이 천천히 감겨 사라지자 이쪽의 눈도 감겼다. 날이 밝고 자신의 방 바닥에서 일어난 사사즈카는 온통 진흙투성이인 부츠와 은색 고리를 발견했다. 새의 발목에 끼울 만한 크기였어. 그가 에리에게 말했다. 에리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물 속에서 그 새를 새장에 안전히 넣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먹이를 주고… 그들은 각자 머릿속에 돛 같은 새, 흰 새를 그리며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치웠다. 이슬이 눈물방울처럼 가지를 휘감았다. 에리는 그것을 손끝으로 훔쳤다. 누가 울고 있어요. 무거운 침묵이 그들의 길을 밝혔다. 


그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가 있는 빈터 위에 보름달이 완벽한 퍼즐처럼 끼워맞춰졌다. 저 멀리서 늑대와 까마귀가 끊임없이 울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무언가로 채울 여백뿐이었다. 둘은 호숫가에 앉았다. 맑은 물이 가장자리를 삼켰다. 사사즈카 씨, 그 고리를 줘요. 에리가 호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속삭였다. 사사즈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은빛 고리는 더욱 작아 보였다. 한 사람의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라면…두 사람. 둘. 두 개의 고리. 하지만 고리는 하나였고, 사사즈카가 어떤 생각을 완성하기도 전에 그녀는 고리를 건네받았다. 이제 그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에리, 말해봐. 사사즈카가 말했다. 네 꿈은 뭐지? 이제 네가 꾸게 될 꿈은…하지만 그 전에는. 에리가 말했다. 나는 물을 가르고 있어요…


…짙어서 내 숨을 막는 물을. 나는 그 안으로 뛰어들고…


그는 고개를 들어 에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편지를 받는 그녀, 만년필을 휘갈기는 그녀, 말을 타는 그녀, 웃는 그녀, 말하는 그녀, 그녀의 집, 방, 책들, 그가 그녀와 함께한 모든 시공간이 한 점으로 모였다. 그 점이 바로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는 동시에 날카로운 새의 눈, 차가운 맑은 물 같은 눈으로 부드럽게 그를 마주했다. 흰 날개가 사사즈카를 끌어안았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답장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도 이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날개가 그의 볼을 찔렀다. -미안해, 내가 잘못 봤어. 그가 속삭인다. -흰색이 아니라 은색이군. 에리는 공기를 가르며 날아올랐다. 큰 날개가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가렸다. 호수가 날갯짓의 반동으로 물결쳤다. 그녀가 화살처럼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사즈카는 호수로 몸을 숙였다. 고리 하나가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그는 그것을 집었다. 빛의 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눈 속의 흰색에 대하여, 그 흰색이 품은 수많은 기억들을 떠올렸다…그리고 눈을 감았다. 


보름달이 뜨면 돌아와요. 호수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우바야시 에리는 꿈을 꾼다. 별빛이 흐르는 엷은 땅과 울부짖는 나무와 오직 혼자 남은, 인어에 대한 꿈을 꾸는 남자에 대한 꿈을. 혼자 남은 것은 남자다. 그는 혼자서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고리를 끼우러 뭍으로 올라온다. 달빛을 폐에 가득 채우며…


숲 속의 인어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오직 이 세계에 하나뿐이다. 하지만 비밀을 간직한 것은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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