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후에, 그 순간이 마치 지독한 악몽 같았다고 묘사했다. '귀를 잘라내버리고 싶었어요...' 테이프가 달칵거리며 돌아간다. 그것에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A의 울부짖음만이 기록에 남겨질 것이다. A는 그때 대도시의 큰 대로변을 걷고 있었다. 눈을 들자 어둠에 잠긴 매우 높은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기묘한 인상을 받았지만 그는 그것을, 순간의 이질감으로 치부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고독하구나.' 도시 한가운데에 붙박힌 듯 선 고독한 사람. '모든 것을 굽어보시는 우리 주님...' 거대한 전광판에 십자로 겹쳐진 두 직선이 돌연 나타났다. 눈이 부신 A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는 곧 빠르게 지나가던 어느 행인과 어깨를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A는 문득 그를 붙들고 골목 끝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에게 거친 소금과 돼지 피와 흐르는 성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전광판이 고장났는지 문득 꺼졌다. 빌딩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다시 적막에 휩싸여 한없이 그 존재를 지워가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쓰거나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거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를 골목 끝의 그 방에 데려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 그 행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A를 밀치고 급히 뛰어나가...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A는 길 한가운데에 서서 쓰게 웃었다.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말이 이상해요.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가 버린 거죠.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은 바로 우리예요. 하지만 우리는 결국 돌아오고, 돌아오고, 또다시 돌아오고...'
그의 주변을 둘러싼,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 이 차례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A는 고요히 몰려드는 시선이 총알이기라도 한 듯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는 그 안에서, 자꾸만 부셔오는 눈을 소매로 가리며, '그 십자가 전광판 말인데요, 역시 너무 거대해서, 압도당할 만큼...' 그렇게 그들의 눈에서부터 쏟아지는 비명을 하나하나 들으며 끝내 울기 시작했다. '귀를 잘라내버리고 싶었어요...무언가 무서운 것이, 맨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흙과 아스팔트...그 비명은 제 거였어요. 제가 지르고 있었다구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신부님, 신부님은 들리죠, 저 지금 소리 지르고 있어요, 신부님...그 모든 사람들은 제 비명을 보고 있었어요. 그들의 눈에서 비명을 지르는 제 입이 보였어요...그 반사는 너무 지독해서, 피가 흐르는 날것 그대로의 거울이라서...그런데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신부님, 듣고 계세요? 지금 듣고 계세요, 김 신부님?...'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소리를 들은 P는 문을 열고 머리며 옷이며 할 것 없이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A를 발견했다. A는 한참 동안 그렇게 P를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P는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A의 머리에서 흐르는 물이 바닥에 조금 고일 무렵 P는 수건을 내밀었다. 감기 걸린다. 좀 말려. P가 그의 어깨를 잡고 문 안으로 들였다. 그는 고분고분하게 P의 말에 따랐다. 신부님. A가 말했다. 무서워요. 뭐가. 밖에 아무도 없어요. P는 덜덜 떨고 있는, 무서워서인지 젖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A를 내버려두고 창문께에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가까운 고가도로와 저만치 떨어진 사거리에는 붉은 조명을 켜고 달리는 자동차가 가득했다. 빌라 바로 아래에서는 유리병 같은 게 깨지는 소리와 고양이가 날카롭게 비명지르는 소리가 뒤섞였다. 여기 2층에 고양이 싫어하는 새끼가 산다. P가 무겁게 말했다. 가끔 저렇게 병나발 들고 지랄하는데 존나 시끄러워. A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밖에 아무도 없어요. 길에도 골목에도 건물 안에도 아무도 없어요. 신부님이랑 저 뿐...그만, A. P가 말을 끊었다. A. 예, 여기 있습니다. 정신 차려. 바닥에 쪼그려 앉은 A는 덩치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 같았다. 너는 여기 있잖아. P는 그것이 최선의 대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A도 마찬가지였다. P가 건네주었던 수건을 꽉 끌어안으며 A가 말했다. 정신 차리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은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P는 불 밝은 거리를 정신없이 걷는 A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는 쉴 새 없이 주변과 충돌한다. 궤도를 잃은 행성이다. A는 무엇도 잡지 못하고 무엇도 A를 잡지 못한다. A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 역시 A를 모른다. A가 아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오로지 P뿐이다. P는 이 말이 주는 무게감에 잠시 비틀거렸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버텨온 것임에도 이번에는 특히 버거웠다. 멍하니 서 있는 P에게 A가 수건을 내밀었다. 여기요. P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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