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입니다. ​퇴고 안함 주의...

어라, 친구랑 키스중이네, 어라, 친구랑 손 잡고 걷는다, 어라, 이거 이래도 되나. 되겠지. 그와 관련된 일이면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려서, 그리고 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아서 우리는 매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자주 만나다가 5년째 되는 날에 만나러 가기 위해 신발을 신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집을 합쳤다. 책 때문에 꽤 복작했던 이삿날의 밤이 다가오고 우리는 반 정도 남은 책 더미를 포기한 뒤 먼지 묻은 옷을 갈아입고 가까운 뷔페로 저녁 먹으러 갔다. 다녀와서 기절하듯 침대에 함께 엎어진 뒤 다음 날 아침 꽤 많은 책들을 다락방으로 올려보냈다. 다락방에서는 나무 냄새와 뭐라 말할 수 없는 좋은 냄새가 났고 우리는 그 곳을 아늑하게 꾸민 다음 가끔 올라가서 책을 읽었다.

린신. 린신, 린신...그냥 불러 봤는데 그가 뜻밖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이래, 너.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쳤다. 매장소.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잊어버린 물건의 위치를 알아차린 그 순간처럼, 또는 아무렇지 않게 호흡하는 것처럼 내 이름을 부르고는 나를 안고 입맞추었다. 입술을 떼자 배가 고파졌다. 밥 먹자. 그래서 조금 일찍 점심을 먹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가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빨리. 그의 품에서는 매번 기분이 좋았다. 주치의랑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나는 또 웃는다.

린신과 처음으로 키스한 건 그와 아주 크게 싸웠던 날이었다. 나는 맨발에 대충 슬리퍼를 끼워 신고 그의 집을 나왔다. 딱히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애들은 아직도 그의 소파에서 맥주 캔을 마지막 방울까지 먹겠다는 일념으로 빨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 한 것처럼 행동했다가 결국 좀 꺼지라고 미친 사람들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그래서 내가 나간 것이다. 여름이라 더웠는데, 나는 어지러웠다. 나는 조금만 더워도 현기증이 쉽게 났다. 공기가 눅눅해서 혀로 입 안을 자꾸자꾸 훑었다. 점점 길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차가운 그 무엇이든 좋으니 누가 나를 구원해줘, 이 아름다운 여름 밤에서 나를. 나는 길 한가운데에서 아이처럼 울다가 1분 뒤에 눈물을 닦고 은행이나 편의점, 어디든 냉방이 되는 곳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린신이 쫓아왔다. 매장소. 그가 나를 붙잡는다. 어디 가려고. 나는 멍하니 저만치 떨어진 편의점을 발견했다. 그는 내 손을 붙잡고 그곳으로 끌고 들어간 다음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하나는 내 입으로 들어갔다. 넌 왜 안 먹어. 그거 빨리 먹기나 해. 왜. 다 먹으면 이것도 그 고집 센 입에 집어넣을 거라서. 나는 헤헤 웃으며 아직도 눈물 맛이 나는 하드를 쭉쭉 빨았다. 다 먹고 나서 그냥 니 껀 니가 먹으라고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린신은 따라나왔다. 린신. 왜. 키스할래?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린신은 결국 그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그날의 키스에서는 내 아이스크림 맛만 났다는 사실이며, 또한 너무 길어서 숨이 막혔다는 것. 그뿐이었다. 우리는 그 다음부터 자주 입을 맞췄다. 중독 수준이었다. 아무도 없고 눈이 마주치면 그랬다. 우리 잘래? 린신이 그러다가 말해서 나는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고 난 다음 날 별 것 아닌 걸로 싸우다가 한 시간 만에 화해했다. 우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서로만 보면 어린 십대들처럼 군다. 나는 그것에 만족한다. 나쁠 건 아무것도 없다.

새벽 네 시에 깨어난 린신이 옆자리에서 열심히 눈물만 줄줄 흘렸다. 푸르스름한 빛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악몽이라도 꿨어? 손바닥으로 눈물을 슥슥 닦아 주었다. 그가 내 손바닥을 잡고 오목한 곳마다 입술을 가져다댔다. 간지러웠지만 참았다. 그러고 나서 그가 다시 울었다. 그만 울어, 린신. 꼴 사납게. 네가 울다 푸스스 웃었다. 네가 가버리는 꿈을 꿨어. 그럼 잡아, 왜 안 잡고 그래. 널 잡는다는 건 널 보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게 뭐야, 이해가 안 돼. 널 잡아두지 않는다면 넌 절대로 떠나지 않겠지, 한번도 잡힌 적이 없으니까, 알겠어, 알았으니까 일단 그만 울어, 응? 키스할래, 린신? 린신? 널 잡은 다음에는? 내가 널 꽉 붙들 수 있을 것 같아? 날 떠나지 않게? 린신, 진정하고, 나 봐. 날 보라고. 네가 있어서 이 정도로 살아갈 수 있는 게 내 지금 상태야. 내가 왜 친구랑 주치의를 동시에 걷어차겠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자 그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매장소. 응.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응. 자자. 그래. 그를 안고 머리를 토닥였다. 숨이 점점 고르게 변했다.

새해에 그가 나를 꼭두새벽부터 불러냈다. 코트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만나자마자 그가 말했다. 사랑해.

이제 돌이킬 수 없네, 하고 그가 말한다

하늘에서 폭죽이 맥없이 터진다 : 그 어떤 폭죽도 내 몸 속에서 폭발하는 것만큼 거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신경쓰든 말든 아름다웠다.

너를 안아도 될까, 하고 네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네게 안긴다 안긴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헤어짐을 바라본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다시 만나서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그렇게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영원을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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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haranging) 님께 드립니다!

눈송이가 눈에 들어가서 눈을 비비고 나니 네가 사라져 있어서 30분 동안 울었다. 앨빈은 집에 들어가서 핫케이크를 접시채로 들고 내 입에 밀어넣었다. 버터가 흐르는 핫케이크는 달았고 어린 내 눈에서 떨어져 입으로 타고 내려간 눈물은 썼다. 앨빈, 그랬었다.

앨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책방으로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집히는 것마다 읽어내려가기 바빴다. 종이에 대충 일주일 정도 영업하지 않는다고 휘갈긴 뒤 문에 붙이고 문을 잠그고 문에 기대고,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하나의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가장 큰 끝을 향해 천천히, 산책하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간다. 그 길은 아직도 슬픔 투성이다. 적응하려면 멀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그 길을 동행해줄 것을 안다.

며칠 뒤 책을 읽다 잠들었다. 꿈 속에서 거의 내 앉은 키만큼 쌓인 눈밭 한가운데에 작은 등불 그리고 읽다 만 책과 함께 파묻혔다. 눈으로 만들어진 벽은 단단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작은 아지트가 등불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손 안의 책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틈새 없이 꼭꼭 붙어 있는, 몇 세기만 더 지나면 완전히 화석화 될 것 같은 오래되고 아름다운 책 더미가 단단하게 뭉쳐진 눈더미처럼 느껴졌다. 앨빈, 그거 알아? 네 아버지는 가장 위대한 이글루 건축가셨어...앨빈에게 말한다. 앨빈이 웃는다.


책방에는 잘못 낸 작은 창문이 있대, 앨빈이 소곤거렸다. 앨빈 때문에 귀가 간지러웠다. 근데 책에 묻혀서 안 보인대, 나중에 찾을 거야, 알맞은 책을 골라내는 것처럼, 혹시 모르지, 창문에 대한 책을 쑥 뺐더니 거기에 작고 쓸모없는 창문이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숨어있을지, 책 더미 하나가 우르르 무너졌다. 나는 허리께쯤 오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을 찾아냈다. 정말로. 그 손님은 내 손바닥 두 개 만 했으며 의외의 인물이 자길 발견해서 정말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힘주어 창문을 열어제끼자 햇빛이 훅 하고 한 줄기 빛을 쏘아보냈다. 책방에는 잘못 낸 작은 창문이 있는데...나는 거기에서 다시 꿈 속의 세계로 빠져들고, 거기에는 날개가 찢긴 나비가 있었다. 그 나비를 어르고 달래 꺼낸 뒤 작은 창문틀에 내려놓자 나비 날개에 달린 큰 눈 같은 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두려워하지 마, 햇빛이 네 눈물을 말려버릴 테지, 나비가 기쁨에 찬 세찬 비명을 지르며 맑다못해 소름끼치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내 폐를 책의 부드러운 냄새와 얼음 같은 바깥 공기가 동시에 뒤섞여 채우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 나비가 바다까지 날아가기를 바랐고, 직후에 그 나비라면, 그 큰 눈을 가진 나비라면 어쩌면, 아니 당연히,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네슈 님께 드립니다 ㅇ0ㅇ)/

아무도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입에 잠깐 넣었다가 굴려 본 다음 뱉지도 않을, 그런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힌 작은 종이조각들을 기억하니, 태오 씨, 그만 해요, 아냐, 잠시 저쪽 가서 벽 보고 서 있어,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는 종이조각들을 눈송이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다 그중 어느 것도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이름은 주인과 함께 묻혔다 조태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최준호가 녹아내릴까봐 그를 뜨거운 불 옆에 두었고 최준호는 무방비 상태로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조태오가 그를 앉혀 두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조태오는 최준호씨와 마주보고 있었다 나도 거기 있었지 최준호라는 이름을 썼었고 그가 그에게 말했다 준호씨는 이제 죽어서 없어 준호씨는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어 우리 준호 씨 준호 씨 무슨 이름이 좋아요 새로 골라 그가 거울을 들이밀었다 누구시죠 누구세요 거기 누구 없나요 당신도 누군가를 찾고 있군요 혹시 최준호를 찾으시나요? 준호 씨는 죽었어요 미안해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인가 하면 글쎄요 모르겠군요 알게 되면 연락드리죠 안녕 전화를 끊자 어디선가 거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준호 씨 이런 건 이름으로 쓸 수 없어요 왜죠 너무 이상하니까 알겠어요 그럼 김범신 어때요 그 이름이 좋은가요 네 좋아요 그게 좋아요 좋아요 왜 좋죠 모르겠어요 이제 그건 제 것이니까 조태오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반복하며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범신 씨, 하고 부르자 그가 웃으며 조태오를 올려다보았다 사랑스러운 김범신 씨 아냐 이름 없는 나의 연인이여 내가 당신을 한번 더 죽이게 해줘 당신이 선택한 이름을 죽이게 해줘 아니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나는 바라고 있어 당신의 불멸을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건 조태오에게 뼈저리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김범신을 죽이려면 그를 우선 살려내야 하지 그의 이름은 지독히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준호 씨 이리 와보세요 그는 오지 않았다


준호 씨 준호 씨는 그냥 간단한 일 하나를 쓸데없이 길게 끈 것 뿐이야 당신은 최준호고 최준호가 아닌 적 따윈 없었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당신과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아무 감정 없이 뜻 없이 당신을 그저 부를 부르기만 할 아무 의미 없는 이름 하나만 대충 말하면 돼 준호 씨의 진짜 이름은 나만 부를 수 있으니까요 알겠어요? 난 준호 씨한테 당신을 온전히 내게만 허락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사랑해요 준호 씨 너무 사랑해요 아 지금부터 사랑을 하자 당신과 나와 최준호와, 그렇게


하지만 그 이름은 안 돼, 하고 조태오가 속삭인다 그건 준호 씨를 삼켜버릴 거예요 나의 나만의 나를 위해 존재할 당신을 삼켜버릴 거야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삼켜지겠습니다, 당신은 여느 때처럼 성스러웠다 나는 다음 날 당신을 위한 새 신분증을 가져다주었다 흔하디 흔한 아무 느낌도 의미도 없는 머릿속에서 대강 생각난 이름을 붙였다 그걸 받아든 준호씨의 표정이 어땠는지, 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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