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꽃꽂이' 로 연성했습니다! 단츄님께 드립니다><)



투명한 막이 부서지듯 매장소가 눈을 떴다. 창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닫으려 팔을 뻗자 길고 흰 소맷자락에서 무언가 천천히 떨어졌다. 꽃잎 조각이었다. 그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응시하다가 손가락을 안 쪽으로 접었다. 좀 더 큰 손이 나타나 형체를 완전히 잃을 뻔한 그것을 빼앗아 갔다. 위를 보자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린신이 있었다. 일어났어, 응, 린신은 얼굴을 찡그렸다. 해가 중천이야.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추듯 창문께에서 빛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는 거대하고 묵직한 푸른 빛을 잠시 상상했다가 그 위압감에 생각을 멈춘다. 자라고 한 건 자넬세. 린신은 길 잃은 장난감 나무배처럼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며 등을 돌려 버렸다. 문을 여는 그의 머리통에 대고 매장소가 무심히 물었다. 그건 자네 건가, 그래, 깨우지 마. 린신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가 가고 난 후 매장소는 창문을 닫고 다시금 잠들었다. 이번에는 며칠 동안 깨지 않았다.

린신이 무심한 손놀림으로 옥으로 만들어진 화병을 매만졌다. 보지 않아도 조각된 문양들을 느낄 수 있었다. 비류가 밝은 창문에서부터 머리를 내밀었다. 아이는 린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직 아무것도 담지 않은 화병을 바라보았다. 비류. 린신이 말했다. 화병 바닥에 뭐가 있는지 알려줄까? 아이는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연 사라져 버렸다. 린신은 낄낄 웃다가 뚝 그쳤다. 손이 점점 차가워졌다. 나쁜 예감이 등뼈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와 그의 뒷목에 도사렸다. 열 개? 그가 문득 생각한다. 빈 화병은 계속 비어 있을 것이다.

찻잔이 굴러떨어졌다. 린신이 기침을 했다. 린신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또는 매우 하기 싫은 표정으로 흉한 그것들을 손으로 그러쥐었다. 나도 알아. 매장소가 대답했다. 더 할 말 없지? 린신이 나직하게 물었다. 없네. 이젠 꽃잎으로만은 안 끝날 걸. 자네는 정말, 정말, 정말 악취미를 가지고 있어. 나도 알아, 나도 안다니까...매장소가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나. 그리고 이번 한 번 만이야.

린신이 또 무언가를 숨겼다. 물론 본인 역시 알고도 남았겠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린신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린신의 목에 손을 대자 그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턱과 윗입술을 양쪽으로 잡고 벌렸다. 린신, 숨겨도 소용없어, 매장소는 바닥을 나뒹구는 화병에 잠시 시선을 던졌다. 화병의 주둥이에서 토악질하듯 볼품없이 빠져나온 그것을 하나씩 집어 린신의 목구멍에 넣었다. 린신이 작게 신음했다. 린신, 그가 말한다. 가만 있어. 나는 몸에 힘을 풀었다. 목구멍에서부터 흙이 차올랐다. 놀랍게도 말할 수 있었다. 잘려나간 줄기 밑둥을 삼킨 흙이 서서히 요동친다. 나의 말은 줄기를 거쳐 결국 꽃으로 나왔다. 장소. 내가 다시 틔워낸 꽃. 나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말하고 또 말하고, 속삭이고, 삼키고, 전날 밤엔 다섯 송이를 삼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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