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노 님께 드립니다.



보인다, 보이지 않아,
어느 쪽이 옳은가? 어떤 이는 보이는 쪽이 옳다 하였다.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쪽이 옳다 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소경염은 잠시 고민한 뒤 답을 말하고는 모든 이의 얼굴을 쓱 바라보았다. 모두 빠짐없이 만족한 듯 웃고 있었다. 소경염은 그들의 입이 괴이할 정도로 벌어지는 것을 보고 몰려오는 한기에 몸을 떨다가 잠들었다.

​그곳은 거울 속이야, 황제가 말을 걸었다. 이제 그만 나오려무나.

​끝나는 게 싫다면 살지 않으면 돼, 스물 한 살이 된 7황자 정왕 소경염은 비둘기와 쥐가 소곤대는 소리로 그의 친우가 매령이 아닌 다른 곳으로 기어가 거둬졌으나 곧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알 수 없을 때 죽었다. 그 후 경염은 어떻게든 살았다. 그 무거운 현실을 등에 지고 너무 무거워 견딜 수 없을 때면 조금씩 떼어내어 씹어 삼켰다. 서른 살이 넘어가자 밤마다 황제의 검은 옷을 입은 또다른 소경염이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너 또한 외로움에 잠기는구나, 그 편지를 보낸 것은 나다. 임수의 죽음을 목격하셨는지요, 목격했고말고, 아이야, 독은 어쩔 수 없는 독이란다. 아아, 이제는 그만두자. 사는 것이 끝없는 지옥이로구나. 절대로 오지 않을 매장소의 끝을 위해 잔을 들자. 그들은 마주보고 술잔을 바닥으로 기울여 버렸다. 황제 소경염은 그 날 이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꺾이더라도, 그 때란 언제입니까, 황제 폐하, 과거입니까, 혹은 미래, 그 때 꺾이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혹은 그 때 꺾이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혹은, 폐하, 이제 주무셔야지요, 밤은 차고 길어요, 가지 말아라, 불면의 밤이 나를 괴롭히는구나, 햇수를 아느냐, 모릅니다, 몰라야 한다, 모두가 알아도 너는 몰라야 한다, 폐하, 폐하는 평생 꺾이실 운명입니다, 폐하는 점점 꺾여나가 결국 바닥에 들러붙으실 겁니다, 그럼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시겠고, 아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나는 네게 미래를 주려고 했었어, 그거 아니, 여러 가지의 미래를 생각해 봐, 나는 네게 그걸 주려고 했었는데, 기억하니, 폐하, 밤은 차고 길어요, 이제 주무세요

​혹시 거울을 좋아하시는지? 이건 아주 대단한 거울입니다, 이국의 가면을 쓴 자가 말하고는 비단 장막을 끌어내렸다. 소경염은 거기서 한번에 세 명 그리고 다섯 명의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구부러지고 늘어지고 뒤틀린 자신 역시 볼 수 있었다. 소경염은 길게 웃고는 큰 장막을 품에 끌어안은 사내에게 큰 보화를 내렸다.

소경염은 적막한 봄의 소택을 즐겁게 거닐었다. 소택의 매화 향은 맡아도 맡아도 끝이 없었다. 그의 어린 호위는 매화를 좋아한다. 매화 향의 남자, 매화줄기 같은 남자. 소경염은 손에 상처가 나는 것도 잊은 채 꽃이 가득 들러붙은 나뭇가지를 마구 꺾고는 아직도 물이 차 있는 연못으로 발을 옮겼다. 선생, 매화가 참으로 아름답구료, 매화 철이로군요, 아, 선생 나는 그대는 나는 나는 이건 당신을 위한 매화 가지요 ​이제 가라앉아 주지 이제 안녕히, 물 속을 헤치다 보면 그대를 다시 만날까.

​녹아 내리는 손 끝을 물에 담그자 붉은 액체가 돌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상처가 꾸덕하게 굳기까지는 작은 연고 통과 며칠이 더 필요했다. 경염에게는 아직 둘 다 없었다. 어쩌면 이 손을 잘라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갑자기 시작된 그의 천한 번째 속죄가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경염. 상처입은 물소가 늪에 빠져 죽은 것을 보았어. 임수가 소리친다. 꿈에서 말이야. 나흘 뒤가 길일이라는구나. 경염, 상처를 늪에 담그면 어떡해. 늪에 빠져 죽을 셈이냐! 경염은 그 말을 들은 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멋쩍은 얼굴로 웃으며 손을 빼낸다. 잘 했어. 임수가 멀어져가며 또 외쳤다. 난 간다. 피가 퍼진다. 자세히 보니 흙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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