븨+백, 책장에는 살인의 시작과 끝이 새겨져 있다 #마돈크_전력_60분 2회차 연성

서재에서 진한 풀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긴 식물의 머리채를 잡아 낫으로 베어 구석에 던져둔 후의, 정리가 끝난 정돈된 방. 나의 서재. 우리는 반쯤 열린 서재 문을 노려보았다. 누군가가 책상의 전등을 켜두었는지 노랗고 가는 불이 새어나왔다. 들려? 그가 말했다. 종이 사각대는 소리가 들려.

그 소리는 그저 나뭇잎이 서로 쓸리며 나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방에 나무가 자랐어. 보여, V? 보고 있어? 나는 보는 대신 들었다. 나뭇잎이 속삭이는 이야기들을, 그 이야기에 사용된 어휘들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주인공은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를 보았다. 어릴 때 그런 이야기를 읽었어. 밤이 되면 나무들이 비밀 이야기를 한다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은 모두 기억한다고. 그 순간을 평생 나이테에 적어넣는다고. 그런 나무들은 말야, 전기톱을 가져다대면 비명을 지른대. 자기들의 기록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대. 네게만 말해주는 거야, 백작. 이후에 그에게 묻자 그는 그 때 잠시 동안 내가 열두어살 먹은 소년처럼 보였다고 했다. 망토는 있었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다.

나무는 늪을 둘러싸고 있었다. 꽤 큰 늪이었다. 거무튀튀한 자국이 가장자리에 눌어붙어 있었다. 허리를 굽혀 손으로 자국을 쓸자 손에는 곧 검댕이 옮겨붙었다. 아니, 이건 재야. 누군가 나무를 태웠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기에서 탄 내가 풍겼다. 백작은 대본을 이미 알고 있는 배우 같았다. 나는 무대에 뛰어든 관객이었다. 1막 3장입니다. 늪 등장.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빙 둘러싼 나무들 사이에 책장 하나가 기울어진 채 끼어 있었다. 속의 책들은 모두 그대로였다. 나는 그 책들의 제목을 모두 알았다. 누군가가 한 권을 뽑아 내게 페이지 수를 말하면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갈색 가죽 표지의 두꺼운 책이 책장에서 늪으로 떨어졌다. 늪은 식사를 즐기듯 맛있게 책을 삼켰다. 무언가 긴 막대기로 저걸 건질 수 없을까, 하고 내가 물었다. 늪에게, 나무에게, 풀을 벤 낫에게, 재투성이 흙에게, 백작에게. 저건 죽었어, V. 구할 수 없어. 아, 책의 용도가 생각났다. 인명 사전이야. 나는 집게손가락으로 늪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인명 사전이야. 그 말은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수많은 이름들이 질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책장을 밀기로 결정했다. V, 밀어. 나는 그의 말대로 했다. 우리가 손을 짚고 함께 온 몸으로 책장을 밀자, 그것은 힘없이 책을 토해내며 늪 속으로 떨어졌다. 무언가 둥둥 떠 있는 더러운 물이 책장을 더럽혔다. 붉은 표지, 노란 표지, 푸른 표지, 검은 표지, 그리고 갈색 표지의 책이 힘없이 등을 내보이며 둥둥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팔다리가 자라날 것 같았다. 뒤집어져 떠 있는 사람들, 사람,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사람들, 엄청난 사람들!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백작은 고개를 돌렸다.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야. 우리는 한 쌍의 위선자들이었다. 책장을 다시 건져낼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늪은 쩍 벌렸던 입을 닫고 책장을 온전히 먹어치웠다. 나무들은 사각대던 소리를 멈추었다. 늪에서 거품이 두세 방울 올라왔다. 모든 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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