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07 민트님께 드림


부부사기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큰길이니 골목이니 샅샅이 뛰어다니는 동안 우리는 주차장으로 조용히 들어가 자동차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좁긴 했지만 대강 버틸 만 했다. 옆을 돌아보니 백작은 고급 와인을 음미하는 상류층 같은 얼굴로 혈액 팩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볼이 쑥 파였다. 
"그만 좀 쪽쪽 빨아."
"맛있잖아."
"없어 보여." 
백작은 3분의 1쯤 남은 팩을 입에서 마지못해 뗐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맛있어?"
"맛있지."
"내가 만든 건."
"됐어." 
나는 며칠 전, 백작이 실험실에서 보여주었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의 반반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양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사진으로 한 50장 연속 촬영해서 벽에 걸어두고픈 심정이었다. 물론 그는 카메라에 안 나오니 말짱 헛일이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는 뭔가 좀 더 멀쩡한…것이 필요했다. '하하, 우리 귀여운 백작이 음식투정하면 못 써요' 하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소중히 숨겨두었던 빨대를 꺼냈다. 문득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백작이 빨대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뭐."
"내 빨대는."
"뭐."
"빨대."
"빨대가 뭐." 나는 포장비닐을 벗겨내어 혈액팩에 빨대를 푹 꽂았다. 그와 동시에 백작이 소리를 빽 질렀다.
"나도!"
"아 그럼 세X일레븐 가서 뭐라도 산 다음에 빨대 주세요 하면 되잖아!"
"지갑 안 들고 나왔다!"
"그럼 말아! 애도 아니고 빨대에 왜 이렇게 집착해!"
백작은 뭐라 말하려고 입을 잠깐 뻐끔대다가 잠시 후 본래의 고급인간틱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차분해지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백작의 손에 들려 있던 혈액팩을 그의 입가에 가져다대어 밀었다.
"남은 거 다 마시면 하나 줄게."
"그 전에 자리부터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여긴 더워."
"슬슬 들어가자, 그럼. 가방 챙겨."
나는 겉옷 주머니에 혈액 팩을 대여섯개 집어넣었다. 백작은 책가방을 메고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바깥이 아직도 소란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쩌긴 어째, 뛰어야지…" 그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골목길을 미친 듯이 가로질렀다.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 저 놈들 뛴다! 저기로 간다!

백작은 다리를 바삐 놀리는 와중에도 키티 책가방을 앞으로 돌려메고 지퍼를 열어 혈액팩을 꺼냈다. 참 대단한 의지력이었다. 그가 뛰는 내 손목을 턱 붙들 때까지도 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기, 지금 뭐야?

"빨대."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빨대 줘."

그 후 나는 약 일주일 내내 밤마다 빨대 꿈을 꾸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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