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합작에 냈었음 합작 주소는 이쪽 http://blog.naver.com/prielia/20206965908?viewType=pc
Catch me if you can
*사망 소재 주의
승객들에게 마치 여러 번 반복해서 “놀잇감을 입에 넣지 마세요.” 를 알려 주는 듯한 안내 방송이 다섯 번 연속으로 머리 위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때였다. 고장난 듯 싶었다. 그는 통로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네모진 가죽 캐리어를 선반에 올릴지 주인 없어 보이는 옆 좌석에 내려놓을지 고민하다가 뭐라 중얼대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남자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품에 안고 있던 자그마한 가방이 반동으로 흔들렸다.
‘생일 축하해요.’
때 묻은 네임택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묶여 있던 끈이 헐거워지다가 이제야 제 수명을 다 한 모양이었다. 그는 네임택을 주워 먼지를 대충 턴 다음 가방 틈에 쑤셔넣었다.
"손님, 통로 한가운데에서 계시면 다른 손님들께 방해가…"
"죄송합니다. 가방 때문에."
미소 짓는 스튜어디스에게 가방을 넘겨주고 자리에 앉은 그는 비행기 일정표를 저장해 놓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은 채로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비행기 모드로 설정해 두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안쪽에 앉은 늙은 노부인은 검은 안대를 하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팔을 뻗어 손끝으로 창문 손잡이를 잡고 끌어올렸다. 밝은 대낮의 햇살이 비행기 날개에 반사되어 창문으로 눈 아프게 쏟아져 들어왔다. 노부인은 여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중간 기둥에 가려진 오른쪽 통로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전해져 왔다. 누군가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틀림없었다. 또는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슬쩍 내려다본 손목시계는 5시 2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든지 빨리 해결해야 할 터였다. 그는 작게 밭은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잡았다.
귓가에서 크게 쾅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본 그의 시야에 큰 회색 카트에 담긴 음료들이 요동치며 들어왔다. 창문 밖은 아직도 회색 활주로가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의아한 눈길을 알아챘는지 스튜어디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앞 칸 손님이 급하게 물을 찾으셔서…"
"준비할 게 오늘따라 많군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미소짓고는 빠르게 뛰어갔다. 어느 새 잠이 달아났는지 노부인이 한 손에 안대를 꼭 쥐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무슨 일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그가 입을 떼려던 찰나에 어딘가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전화벨 소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주변에 앉아서 막 벨트를 메려던 손님 두엇이 위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들은 사용한 지 1년이 넘어가는 핸드폰의 벨소리를 기본음으로 절대 하지 않을 사람들인 것이 분명했다. 그는 얼굴이 약간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보관함 뚜껑을 열어젖히고 가방을 끌어내렸다. 바깥쪽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퍼를 열고 끄집어내자 전화는 곧바로 끊어졌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는 바로 전날 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울다가 핸드폰을 갓 탄 커피가 담긴 도자기 안으로 떨어트렸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문을 소리나게 닫고 나가 버렸고, 그는 커피잔 속에 들어가버린 핸드폰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커피가 뜨거워서기도 했고,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어차피 저장되어 있던 사진이라거나 메세지 등은 복구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그녀를 떠올리게 해 줄 가장 최근의 물건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가 그 핸드폰을 그대로 내버려둔 가장 큰 이유였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는 설득하길 포기하고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런 말이 들렸다. 언제나 당신이 맞고 내가 틀렸지만 이번에는 내 말 좀 들어 줄 수 있었잖아요.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해 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안전한 길 말예요. 이건 자살 행위예요. 자살이라는 단어를 토하듯 내뱉은 그녀는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군인은 자기 몸을 우선하도록 배우지 않아. 그가 말했다. 그렇게 그녀의 핸드폰은 마치 제 자리를 찾듯 커피잔으로 떨어졌고 그는 혼자 남게 되었다. 화면에 뜬 모르는 번호를 하나 하나 입으로 굴려 보며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들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미 외워 버린 번호를 치는 광경을 떠올렸다. 통화 연결음이 영원히 지속되는 심장박동처럼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갈 때 어쩌면 그 여자는 조금 훌쩍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굉장히 쉽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울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역할은 대부분 그가 맡았다. 그리고 역시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가 틀리고 그녀가 옳은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제 시간에 맞추지 못 할 것 같네." 아마도 전화선 너머에서 흰 가운을 입고 이 급할 때 웬 전화야, 라고 말하려 했을 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어."
빌리 카타기리가 대답했다. "너…" 그라함은 전화를 끊고 손에 꽉 쥐었다. 그는 작은 캐리어 손잡이를 마치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잡고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곧 달리기 시작했다. 막 비행기에 발을 들여놓던 사람들이 그를 노려보았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가방에 끼워져 있던 네임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의 행렬은 길고 무거웠다. 그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그렇게 헤치고, 또 헤쳤다.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그의 머리 뒤에서 쨍 하고 울렸다.
"그라함 에이커!"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네임택을 손에 들고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입 안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그 다음엔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조금 더 크게 말했다.
"그래!"
"가져가실 거예요?" 아이가 물었다.
"던져 주면 고맙겠다." 아이는 그렇게 했다. 그는 한 손으로 그것을 멋지게 잡아내고는 다시 몸을 돌려 용수철 인형처럼 뛰어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금 줄을 맞추어 비행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사람들은 자신이 핸드폰을 미리 꺼 둔 상태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 * *
사람이 붐비는 공항 한가운데에서 그라함 에이커는 창문 쪽 의자에 캐리어를 기대어 두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큰 창문 때문에 실내라는 느낌은 그다지 강하게 들지 않았다. 그가 타려고 했던 비행기가 꽤나 가까이에서 보였다. 멀지만 가까워 보이는 곳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면 해 줄 이야기를 떠올렸다. 역시 그 핸드폰은 아직 돌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 할 작정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수리 센터에 맡겨 놓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몇 시쯤 끝나는데요? 언제 찾으러 가야 해요?"
정확한 수리 완료 시간을 알려주고 나면 그녀의 머릿 속 흐름은 지역 지도와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과 수리비 견적서로 이어지다가 결국 또 다시 뜨거운 커피잔까지 이르게 될 터였다. 그녀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가장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 되새기다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전산 실수로 사망자 처리가 되어 통지서가 집으로 보내진 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가 해명을 해야 했던 때에 그녀는 이후 꼬박 반 년 동안 새벽에 악몽을 꾸며 깨어났다. 그리고 그건 그저 실수였을 뿐이라고 위로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아직도 무서워요. 그런 건 빨리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그녀는 외출 준비를 아주 빠르게 끝낸다. 그가 전화를 끊고 앉아서 기다리면 적어도 40분 내로 공항에 들어서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단발머리를 헝클어트린 채 뛰어오면 그는 그녀가 배고파하든 아니든 반강제로 뭐라도 먹일 작정이었다. 그 전에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녀가 받아줄 지 의문이었지만 그런 고민은 행동을 실천에 옮긴 뒤에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그는 헛기침을 두 번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은 전화에 그녀가 부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안녕하세요, 고객님. 요금 미납 통지 때문에 전화를…"
"예?"
"납부 마감은 다음 주 금요일입니다."
다음 주 금요일? 그가 멍하니 되물었다. 네, 다음 주 금요일까지 미납 요금을 내지 않으시면 정지가 되는데요… 약간 지친 목소리가 대답했다. 등 뒤에서 젊은 여자가 경보기처럼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선회하는 포식자를 발견한 미어캣 무리처럼 일제히 고개를 같은 곳으로 돌렸다. 무언가 크고 무거운 것이 죽어갈 때 나는 소리가 유리를 넘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전해져왔다. 그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벌건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거대한 비행기가 불타고 있었다. 창문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허공으로 맥없이 튀는 불꽃에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일부는 아직 창문에 달라붙어서 셔터를 열심히 눌러 대고 있었다. 뒷걸음질치는 무리 중 하나가 삿대질을 했다.
"그만 찍고 나와, 멍청이들!" 몇몇이 동의했다. 그러나 쓸모 없는 걱정이었다. 반쯤 남은 잔해에서 아까보다는 작은 폭발음이 한 번 더 들리자 마침내 창문 앞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서서히 주저앉는 비행기 안에서 구해 달라는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성호를 그었다. 그는 그녀가 집에 편안히 앉아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며, 건담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어느 중동 소국의 병원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봤을 때에도 성호를 그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알림 창이 어느새 전화가 끊긴 핸드폰 화면에 떠올랐다. 10 분 전에 도착한 메세지였다. 그는 멍하니 내용을 읽었다.
「잘 찾아 봐, 그 여자도 같이 탔을 거야.」
하얀 커피 잔 안으로 비행기가 천천히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던 뒷 날개가 반 조각이 났다.
"저 안에…"
공항 한가운데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도어가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지금 창 밖에서 벌어진 장면이 그대로 화면에 중계되고 있었다. 뉴스 속보였다. 이륙 직전에 폭발한 A-24기, 사망자 불명, 부상자 불명. 아나운서는 자세한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어쩌면 절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사실을 읽기 위해 아나운서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장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은 아나운서 자신일지도 몰랐다.
"그라함!" 그는 눈을 감았다. 차가운 손이 그의 손을 감싸쥐었다. "늦었네요."
그가 눈을 뜨자 주변에는 그녀의 목소리도, 기척도 발걸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삐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그를 물처럼 에워쌌다. 아나운서는 누군가의 손에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잠시 뒤 화면에 새로운 자막이 떴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네임택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두 번째 물건으로, 그가 첫 번째를 잃어버린 뒤 같은 것을 구매해 그녀가 써 넣었던 그대로 베낀 거였다. 가방 옆에 쪼그려 앉아 펜 뚜껑을 입에 문 채 뭔가 고민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생일 축하해요."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다. 공기를 가르는 사이렌 소리가 멕없이 끊겼다. 그는 문득 카타기리에게 다시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제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네. 지금쯤이면 카타기리가 있는 곳에서도 뉴스가 전해졌을 테니 친우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래.' 그리고 전화를 먼저 끊는 쪽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쪽의 몫일 터였다. 혼자 남은 그는 길고 끔찍한 악몽을 꾼다. 그녀가 무너진 비행기 안에서 어딘가에 눌려 버린 손 끝으로 그를 더듬어 찾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 누구도 그건 단순한 전산 실수였을 뿐이라고 말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 왔다. 납부 기간은… 무언가 어그러져 맞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미납 요금을 내고 세탁소에 들르고 텔레비전을 켜고 플래그에 올라탔다.
"괜찮으세요?" 누군가가 물었다.
"아니오."
이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커피 잔으로 떨어지는 휴대폰을 잡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