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큰(@tekniwa)님께 드립니다 >~<)/
로봇 하나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목을 잘라내고 다른 손으로는 들고 있던 커피 머그를 곧장 단면에 들이부어 폐기 처분이 되었다. B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복도에서 마주쳤다. Q는 매번 뜨거운 김이 나는 머그를 들고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B도 덩달아 고개를 까딱했다. 둘은 서로의 목적지를 몰랐다. 아무 명패도 없는 흰 문을 열 때면 B는 언젠가, 그들이 같은 흰 문을 열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Q는 폐기되었다. B는 지나가는 연구원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Q 말입니다. 연구원이 대답했다. 그래, 그 친구. 갑자기 그걸 마셔버리더라고. 마셨다고요? Q는 자기 목을 뜯었어요. 네가 어떻게 알아. 눈 앞에서 봤으니까. 정 헷갈리면 CCTV 확인해. 15-7번. 연구원은 다시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갔다. B는 홀로 남았다. 그에게는 무언가 격렬한 색이 필요했다. 흰색이 아니라.
몇 시간 후 그가 앞으로 수백 개는 깨트릴 흰 머그의 첫 시작점이 될 그것이 도착했다. 그것은 작은 갈색 상자에 담겨 그가 쓰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B는 상자를 열고 머그를 꺼낸 다음 텅 빈 벽에 내던졌다. 째지는 소리와 함께 도자기가 박살이 났다. 문 옆에 달린 붉은 비상등이 시끄럽게 울리며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들어왔다. 연구원이 말 없이 날카로운 조각들을 가리키자 문가에 대기하던 로봇이 천천히 들어와 남은 조각들을 모두 완전히 으깨고는 주둥이로 빨아들였다. B는 그 후로 자주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그 때마다 주로 날카로운 단면을 가진 사금파리를 생각하고는 했다. 그 사금파리는 B의 손목을 베기도 했고 Q의 목을 잘라내기도 했다. Q의 몸 속에 얽혀 있는 전선이 뜨거운 커피를 만나 새까맣게 탔다. 그러나 겉은 멀쩡했다. B는 로봇 두 명이 죽은 Q를 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목이 덜렁거리는 Q의 눈과 B의 눈이 마주쳤다. Q는 닥터 ------의 사무실로 옮겨졌다. 곧장 폐기되지 않은 것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B가 Q가 들어간 사무실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Q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B는 이상 행동으로 인해 검사를 받고 목 위의 대부분을 교체했다. B는 교체 내내 뼈저리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연구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 해. B는 뭘 말입니까, 하고 물었고 연구원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다. B는 이제 무기력한데다가 우울하기까지 하다. B는 카운터에 찾아가 정신과 C병동에 가도 되냐고 요청했고 7분 뒤 기각당했다. 혼자 해결해보라는 답변을 얻었다. B는 지독하게 우울했다. B는 잠시 고민하고는 옥상에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Q가 왜 이 방법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널브러진 B의 잔해를 사람들이 수거했다. B는 또다시 조립되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던 연구원에게 다시 물었다. 뭘 말입니까. 연구원은 뜻밖에도 미소지었다. 그래, 더 해봐.
B는 자신이 이상 행동이 모두 기록되고 분석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이 그 데이터들로 인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B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연구원들은 일주일 내내 주문 제작된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고 머그컵 박스를 가지런히 쌓아둔 채 머그 10개를 동시에 짓밟고 있던 B를 발견했다. 연구원들은 또한 옥상 난간에 서 있다가 한참 뒤에 자신의 머리를 떼어내어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닥터 ------의 페라리에 내던진 B(의 몸체)를 발견했다. B는 복도에 서서 지나가는 연구원들마다 붙잡고 Q가 어디 있는지, CCTV 15-7번을 확인하러 갔는데 왜 담당자는 그런 번호의 카메라는 없다고만 대답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연구원들은 그럴수록 더욱 크게 미소짓고는 가 버렸다. B는 Q가 그리웠다. 미치도록 그리웠다. 미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느 날 상자를 열자 Q라고 쓰여진 머그가 나왔다. 그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그것을 벽에 던질 뻔 했다. 그 특별한 머그는 B의 찬장으로 들어갔다. B는 자주 찬장을 열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스피커에서 연구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B. B. 왜 그걸 부수지 않지? 이번에는 뭐가 다르지? B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물결 위의 파문이죠. 그게 가라앉으면 어떻게 되지? 무슨 일이 새로 생기나? B가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요. 더 이상은 말이죠. B는 그 날 해가 진 뒤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지켜보던 연구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커피를 끓인 뒤 향을 음미하듯 머그를 들어 코에 가져다댔다. 연구원들이 잡고 있던 펜이 부들부들 떨렸다. B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B는 밝은 방에서 깨어났다. 연구원이 그가 깨어난 것을 보고는 차트를 톡 두들겼다. B의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B는 차트에 뚜렷하게 적힌 실패라는 단어를 곰씹기 시작했다.
Q가 왜 뜨거운 커피를 목구멍에 들이부었을까? 연구원이 말했다. 자넬 사랑했기 때문이야. 무슨 말씀이시죠? 닥터 ------가 얼마나 웃었는지. B를 사랑해요. 고장난 Q가 말한다. 죽고 싶을 만큼. 연구원이 다시 말했다. 너흰 너무 극단적이야. 왜 그런 지 모르겠다니까. 왜 머그를 벽에 던졌지? Q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B가 대답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실패야. 너흰 비인간적인 그걸 좀 벗어 버려야 해. 좀 멀쩡해지라고.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해. 전 마지막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죠. 그걸로는 부족하지. B는 그 말을 듣고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연구원도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렇게 웃었고 웃음이 멈추자 B는 폐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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